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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810) 개구리소년 사건 다각도 해석

2021년
8월
작성자
손 예진
작성일
2023-01-07 20:00
조회
3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개구리소년 사건’에 대해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오늘날까지도 개구리소년 사건에 대해서 수많은 얘기가 오가고 있으며, 한국의 3대 미제사건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미제로 끝났기 때문에 개구리소년 사건은 여러 방면에서 추측되고 있다. 몇 가지의 추측을 알아보기 전 먼저 개구리소년 사건에 대해서 알아보자.

 

▲ 개구리소년 사건에 희생된 소년들

 

1991년 3월 26일 사건이 발생했다. 위 이미지 속 소년들은 대구성서초등학교를 재학 중이던 학생들이며, 본 사건의 피해자들이다. 이러한 다섯 명의 아이들이 당시 집 뒤편에 있는 와룡산에서 도롱뇽알을 잡으러 가겠다고 발길을 옮긴 후 사건이 발생했다. 이후 다섯 아이 모두가 집으로 돌아오지 않아 실종에 이르렀다. 결국 당시 아이들을 찾지 못한 채 11년 6개월 만인 2002년 9월 26일 유골이 발견된 안타까운 사건이다.

사건 당시 아이들을 마지막으로 본 사람은 인근 마을에 사는 친구들과 마을 주민들이었으며, 와룡산을 오르기 전에 목격된 것으로 파악됐다. 또한, 당일은 임시공휴일이었기에 등교하지 않았다고 한다. 실종됐을 당시 소년들의 부모는 생업을 포기할 만큼 아이들을 찾아 전국을 헤맸으며, 전국에 있는 초등학교에서는 ‘대구 개구리친구 찾기 운동’을 펼치면서 모두가 간절히 소년들을 찾아보려고 노력했다.

그만큼 심각한 사건이었고, 1991년 노태우 대통령의 특별지시를 통해 수사본부를 체결하여 전국을 수사했다. 또한, 사회단체들은 전단을 만들어 전국 곳곳에 뿌리며 아이들의 실종을 알렸다. 게다가 담배기업도 힘을 보태 담뱃갑이나 다른 상품에 개구리소년들의 모습을 실어 수색에 동참하기도 했다. 현상금은 당시 4,200만 원이었으며 단일 사건임에도 엄청난 인력인 35만 명이 투입되었지만, 사건을 해결하지 못했다.

사건이 발생하고 아이들의 흔적이 하나도 발견되지 않자 사람들은 다양한 추측을 하기도 했다. ‘외계인 납치설’, ‘북한공작원 유괴설’, ‘불치병 치료용 희생양’, ‘타살설’ 등 소문들이 돌기도 했다.

 

▲ 사건 당시 개구리소년 현상금

 

1991년 당시에는 살인사건의 공소시효가 15년이라는 제한이 있었다. 현재는 살인죄에 공소시효가 없었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있었기에 개구리소년 사건은 2006년 3월 25일부로 공소시효가 만료되었다. 사실 공소시효가 만료되기 4년 전 2002년 9월 26일에 개구리소년들의 유골이 발견되었다. 실종된 지 11년 6개월 후 아이들이 발견된 것이다. 5구의 유골과 신발 다섯 켤레가 와룡산 중턱에서 발견되었고, 사건 당시 경찰 측에서는 아이들이 길을 잃어버린 후 저체온증으로 사망했다고 추측했다. 하지만 부검을 담당했던 법의학팀 측에서는 감정 결과로 해당 사건은 분명한 살인사건이라고 밝힌 바가 있다. 아이들이 발견되었으나, 수사에 진전이 없기에는 과거와 매한가지였다. 결국 아직도 개구리소년 사건의 범인은 밝혀지지 않아 미제사건으로 묻혔다.

사건 당시 수사를 책임지고 지휘했던 김영규 전 총경은 올해 6월 국민일보와 인터뷰를 나누던 중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했다. “유골 발견 당시 경북대 법의학팀에서 사인을 타살로 발표했지만, 이는 잘못된 것이다. 소년들은 저체온증에 의한 자연사이다.”라고 발표했다.

이에 더불어서 김영규 전 총경은 “아이들의 유골이 발견된 현장이 이들의 자연사를 증명하는 현장이다. 유골과 함께 발견된 136개의 녹슨 탄두가 든 우유팩은 이들이 사망한 뒤 세월을 거쳐 자연에 의해 매몰된 것을 보여주는 증거이다.”라며 자연사를 주장하기도 했다.

 

▲ 유골이 발견된 와룡산 계곡의 지형

 

그뿐만 아니라 그가 자연사라고 주장하는 다른 이유는 우철원 군의 두개골이 체육복 상의에 싸여 있는 사실과 김영규 군의 하퇴부가 체육복으로 매듭이 지어져 있는 모습들이 추위에 떨었다는 증거라며 주장했다. 이에 이어 사건에서 범행 도구를 특정하게 찾지 못했으며, 당시 법의학팀은 유골의 두개골 골절흔은 소년들이 사망하기 전에 생긴 흔적이라고 했으나, 이를 입증할 수 있는 보강 증거를 찾지 못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김영규 전 총경과는 다르게 타살이라고 주장하는 법의학팀은 현재도 타살에 의한 사건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당시 개구리소년 사건이 타살이라고 밝혀낸 채종민 전 경북대 법의학교실 교수는 “개구리소년 유골 발견 당시와 비교했을 때 큰 차이가 없다. 그때보다 기술이 발전한 것도 아니고 관련 장비도 그렇다.”라고 말했다. 즉, 현재 확보한 사실에서 더 발견할 수 있는 사실이 없다는 의미이다.

더불어 채종민 전 교수는 유골 발견 당시 아이들의 두개골에 수십 개의 상처 흔적이 있었다고 밝혔다. 또한, 사후 상태에서 발생할 수 없는 예리한 골절들과 유골이 땅속에서 발견된 점을 근거로 해당 사건은 타살이라고 보인다고 말했다. 땅 속에서 발견되었을 때 유골들은 한곳에 모여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자연사로 인해 유골이 남겨지게 되면 곳곳에 흩어지는 것이 정상이라고 한다. 이러한 이유로 인해 누군가가 아이들을 살해하여 땅에 묻은 것이 아니고서는 이렇게 발견될 수가 없다고 말했다.

 

▲ 채종민 전 교수

 

타살이라고 주장하는 채종민 전 교수의 근거에 대해서 경찰 측은 폭우로 인해 산사태가 발생했더라면 충분히 아이들의 유골이 한곳으로 모일 수 있다고 밝혔다고 한다. 하지만 채종민 전 교수는 이러한 주장에 대해서 기상청의 자료들을 통계하고 분석한 결과, 실종 당일을 기준으로 3개월 동안 폭우가 내린 흔적이 없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 개구리소년 사건을 모티브로 한 영화

 

이처럼 아직까지도 미제로 남은 개구리소년 사건을 기반으로 한 영화가 개봉되기도 했다. 위 이미지에 나와 있는 ‘아이들...’이라는 영화 외에도 강동원이 출연하는 ‘가려진 시간’이라는 영화도 개구리소년을 연상 짓게 한다.

타살일 경우라도 범인이 밝혀지지 않아 안타까운 사건이다. 초등학생이었던 어린아이들이 무슨 일을 당했을지 상상이 가지 않는다. 그 때문에 앞으로도 해당 사건을 잊지 않고 추모해야 하며, 미래에 이와 같은 사건이 발생하지 않도록 범죄가 없는 사회가 되길 바란다.

 



이미지 출처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65746&cid=43667&categoryId=43667
http://www.topstarnews.net/news/articleView.html?idxno=1733507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05/0001451934?sid=102
https://www.yeongnam.com/web/view.php?key=20190921.010060726010001
https://movie.naver.com/movie/bi/mi/photoViewPopup.naver?movieCode=74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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