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아볼 수 없는 ‘신상 공개 사진’, 실효성 논란
작성자
송 민서
작성일
2022-10-11 11:40
조회
75
▲ 검찰에 송치되는 전주환
최근 흉악범에 대한 신상정보 공개 제도가 실효성 논란을 빚고 있다. 이는 얼마 전 신당역 2호선 여자 화장실에서 스토킹하던 20대 역무원을 살해한 혐의로 구속된 피의자 전주환의 신상정보가 공개된 이후로 거세게 불거졌다.
지난달 19일 공개된 전주환의 사진은 신분증 사진이었다. 그러나 검찰 송치 과정에서 드러난 모습은 공개되었던 신분증 사진과 비교하면 훨씬 왜소한 체형이었다. 신상정보가 공개될 당시와는 너무나도 다른 실물에 대중들은 “당장 길에서 만나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다르다.”라고 말하며 신상정보 공개 제도의 실효성을 지적했다.
범죄자의 신상 공개는 ‘특정 강력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례법’ 제8조 2항에 따라 요건을 모두 충족할 때 이루어진다. 해당 요건은 ‘수단이 잔인하고 중대한 피해가 발생한 특정강력범죄’, ‘국민 알권리 및 재범 방지·범죄예방 등 공공이익 보장’, ‘피의자가 그 죄를 범했다고 믿을 만한 충분한 증거가 있음’, ‘피의자가 청소년 보호법상 청소년에 해당하지 않음’까지 총 4가지이다.
이는 2019년 하반기 법무부 및 행정안전부의 유권해석이 내려지면서부터 시행된 제도이다. 그전까지는 검찰 송치 시 얼굴이 공개되었는데, 2019년 말부터는 피의자의 사진을 직접 공개하게 된 것이다. 당사자가 동의할 경우 ‘머그샷’을 찍어 현재 모습을 적나라하게 공개할 수 있지만, 거부한다면 피의자의 신분증에 담긴 증명사진을 공개한다.
바로 이러한 점에서 실효성 논란이 시작된다. 지난 2일 경찰청이 제공한 정보에 따르면 신상공개 제도가 시행된 2019년 말부터 2년간 신상 공개가 결정된 피의자는 총 21명이었고, 그중 머그샷에 동의한 피의자는 단 1명뿐이었다. 그중 18명이 신분증 증명사진을 공개하였고, 사진 대부분은 촬영 시점이 언제인지조차 불분명한 것이었다.
언제 찍었는지도 알 수 없는 사진이 범죄자의 신상이라며 공개되니 당연히 현재의 모습과는 다를 수밖에 없다. 게다가 증명사진은 사진관에서 보정 작업을 거쳐 만들어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보니 더더욱 실제 모습과는 차이가 나게 되는 것이다.

▲ N번방 사건의 주범 조주빈
실제로 신상정보 공개 제도의 실효성 논란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재작년 온 국민을 떠들썩하게 했던 N번방 사건의 주범으로 밝혀진 조주빈은 중고등학교 시절 찍은 것으로 추정되는 교복 입은 사진이 공개되었다. 지난해 전자발찌를 끊고 여성 2명을 살해했던 흉악범 강윤성 또한 실제 모습보다 현저히 젊어 보이는 사진이 공개되어 ‘도대체 범죄자의 신상을 공개하는 것이 효과가 있긴 한 것이냐.’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거세게 일어나기도 했었다.
피의자가 언론 포토라인에 설 때 마스크를 써도 제지할 수 없다는 것 또한 문제이다. 기존의 신상 공개 지침은 모자나 마스크 등으로 가리지 않고 자연스럽게 얼굴을 노출하여 공개하게 되어 있었다. 그러나 지난해 8월 국가경찰위원회가 새로 의결한 신상 공개 지침에 따르면 더는 피의자가 모자나 마스크를 벗지 않아도 강제할 수 없게끔 바뀌었다.

▲ 머리카락으로 얼굴을 가린 채 나타난 고유정
이전에도 전남편을 살해하고 시신을 훼손한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고유정이 검찰 송치 과정에서 머리카락으로 얼굴을 가린 채 이동하는 일이 있었다. 코로나19의 확산 이후에는 마스크 착용 문제 때문에 피의자의 얼굴 공개에 대한 논란은 끊이질 않았다. 실제로 남성 아동·청소년들의 성 착취물을 제작하고 유포한 김영준은 취재진이 마스크를 벗어달라는 요청을 하는데도 끝내 응하지 않았다. 신상 공개 지침 변경 이전에도 머리카락으로 가리는 꼼수를 부리거나 팬데믹 등으로 피의자들이 얼굴 공개를 피해 가는 일이 빈번했는데, 지침 변경 이후에는 모자와 마스크를 마음껏 쓸 수 있으니 더욱 심해질 것이 우려된다.
이에 대해 승재현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신상공개 제도는 국민의 알 권리와 재범 방지, 범죄 예방이 목적이다. 따라서 피의자의 현재 사진이 공개되어야 실효성이 있는 것인데 증명사진으로는 제도 도입 목적을 충족하기 어려운 상황이다.”라고 말했다. 송치 과정에서도 머리카락이나 마스크 등으로 얼굴을 가릴 수 있는데, 사진마저 촬영 시점도 불분명하고 보정까지 들어간 증명사진으로 대체된다면 본래 목적인 국민의 알 권리가 충족되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한국여성변호사회 인권이사 서혜진 변호사 또한 지난달 20일 “알아보기 힘든 과거 사진이 아니라 현재 피의자의 사진이나 얼굴을 국민에게 보여줄 필요가 있다.”라며 신상 공개 제도의 실효성 보완이 필수적이라고 지적했다.
이러한 논란이 거세지자 경찰은 머그샷 공개를 현재처럼 피의자 동의를 받아야만 할 수 있는 것이 아닌, 피의자 동의 여부와 상관없이 진행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그러나 신상공개 제도가 확대되는 것만이 답은 아니다. 강서영 헌법재판소 헌법재판연구원은 “피의자의 신상을 공개함으로써 달성되는 공익이 기본권 침해를 압도할 정도로 크기는 어렵다.”라며 신상 공개 제도 확대에 회의적인 견해를 밝혔다. 피의자의 신상공개를 더욱 확대함으로써 기본권 침해가 이뤄지는데, 결국 헌법상의 ‘과잉금지원칙’까지 위배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범죄자의 신상을 공개하는 것만이 범죄 예방과 재발 방지에 대한 대책은 아닌데, 이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이루어짐으로써 오히려 범죄의 본질이 왜곡될 수도 있다는 지적 또한 존재한다. 이러한 신상공개 제도 만능주의 풍조가 근본적인 해결책을 고안하는 데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는 관점이다.
확실히 신상공개 제도의 확대가 명확한 답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신상공개 제도가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것은 틀림없다. 따라서 신상공개 제도의 명암을 철저히 따져 세부적인 운영방식에 대해 고민해볼 필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미지 출처
https://www.google.co.kr/amp/s/amp.seoul.co.kr/m/20221003500076
https://www.google.co.kr/amp/s/news.sbs.co.kr/amp/news.amp%3fnews_id=N1006918359
https://www.google.co.kr/amp/s/www.donga.com/news/amp/all/20220922/115578107/1
전체 0
댓글을 남기려면 로그인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