랜드마크로 알아보는 세계사 ③ 만리장성
작성자
송민서
작성일
2023-02-17 03:47
조회
62

▲ 만리장성
지난 기사에서는 인도의 대표적인 랜드마크 타지마할에 대해 살펴보았다. 이번 기사에서는 중국의 대표 건축물이자 세계적인 랜드마크인 만리장성에 관한 이야기를 알아보도록 하자.
만리장성은 고대 중국의 진나라 시기에 지어진 건축물로, 우리에게 ‘진시황’으로 잘 알려진 진의 시황제 시절 축조되었다. 이는 흉노족 등의 유목 민족이 침입하는 것을 막으려는 목적으로 건설되었으며, 이후 명나라 시기까지 지속해 보수하여 현재 모습을 갖추었다.
중국을 대표한다고도 할 수 있는 만리장성은 1987년 자금성 등과 함께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2022년 베이징 동계 올림픽 때도 만리장성 특별 세미나와 특집 단행본을 배포하였고, 이러한 행보는 이전부터 이어져 왔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개막식에서도 만리장성을 중국의 3대 보배 중 하나로 소개하였던 것에서 이를 알 수 있다.
실제로 만리장성은 중국을 찾은 관광객들이 선호하는 관광지 중 하나이다. 2022 베이징 올림픽 관계자는 만리장성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만 약 2억 명에 달한다고 발표했다. 또한, 각국의 정상들만 약 500명이 만리장성을 찾았으며, 여기에는 엘리자베스 2세 등의 지도자도 포함되어 있었다. 장대한 크기의 위엄을 자랑하는 세계적인 건축물을 보기 위해 세계 각국에서 사람이 몰린 것이다.
많은 인기를 자랑하는 만리장성은 거대한 외관만큼 여러 특징이 존재한다. 먼저 진나라부터 명나라 시기까지 약 1,500년에 걸쳐 지어진 건물인 만큼 구간마다 구조에 차이가 있는 것이 특징이다. 진시황 때부터 삼국 시대 무렵까지 지어진 구간은 흙 반죽을 미리 깔아놓은 다음 흙과 볏짚을 섞어 차곡차곡 쌓는 방식으로 지어졌다. 반면 명나라 시기에는 벽돌을 사용하여 성벽을 쌓았으므로 시기에 따라 방식이 차이 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엄청난 길이의 건축물이다 보니 우주에서도 보인다는 이야기 또한 많은 사람의 입에서 오르내린다. 하지만 나사(NASA)는 우주에서 만리장성을 관측하기는 어렵다고 공식 발표했다. 전문가들은 만리장성이 엄청난 길이에 비해 폭은 최대 10m 정도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멀리 떨어진 우주에서 관측하기는 어려운 것으로 보고 있다.

▲ 만리장성 성벽 길
그렇다면 중국이 우주에서도 보인다는 말을 낳을 정도로 거대한 성벽을 축조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를 알아보기 위해선 기원전 중국의 춘추시대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중국이 장성을 쌓기 시작한 것은 북방 민족의 침입을 막기 위해서인데, 만리장성 축조가 시작되기도 전인 중국의 춘추시대(BC 770년~443년)부터 북방 민족의 침입은 계속되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우리가 알고 있는 만리장성이 진나라 시황제 때부터 건축되기 시작한 것이지, 성벽은 춘추시대부터 건축되어 왔다.
이후 중국을 통일한 진시황이 이전부터 꾸준히 침략을 일삼았던 북방 민족을 견제하고, 국력을 견고하게 만들기 위해 기존에 있던 성벽을 연결하고 증축했다. 이 과정에서 본격적으로 현대에 ‘만리장성’이라고 불리는 성벽이 만들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진나라 이후에도 한나라를 거쳐 명나라까지 이 성벽을 더욱 장대하게 증축하면서 마침내 만리장성이 완성되었다.
그러나 과연 만리장성이 북방 민족으로부터 국가를 보호하는 방어막 역할을 확실히 했는지에 대해서는 아직도 논쟁이 펼쳐지고 있다. 미국 펜실베이니아 대학교의 아서 왈드론 교수는 “만리장성으로 외부 침략에 대비할 수 있는 시간을 벌었다.”라고 말했다. 또한, 1428년 중국의 한 장군이 몽골과의 전투에서 만리장성의 지리를 이용하여 승리를 거둔 기록도 존재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만리장성이 군사적으로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고 보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하지만 허점 또한 많았다는 의견이 다수 등장하고 있다. 우선 진나라에서 시작해 명나라까지 굉장히 오랜 기간 축조된 만큼 짜임새가 완벽하지 않았다는 것에서 문제가 시작된다. 장기간에 걸쳐 건설되다 보니 군데군데 빈 곳이 존재했고, 이러한 점이 결국 약점으로 작용하여 적군에게 그대로 노출되었다는 것이다.
영국 버벅 대학교 줄리아 러벨 교수는 “명나라는 만주족의 침입으로부터 전혀 보호받지 못하였고, 이에 불만을 품은 명의 한 장군이 문을 열어줘 만주족이 그대로 침입했다.”라고 말했다. 그 때문에 명나라는 만주족에게 멸했으며, 1644년 청나라를 건국하기까지 이르렀다는 설명이다.
결국 만리장성은 건축물의 위대함과는 달리 군사적 방어막의 역할은 제대로 하지 못했다고 볼 수 있다. 이와 함께 많은 인력과 재정을 동반하여 축조하였다는 사실은 만리장성이 가장 비판받는 요소이다.
지난 기사에서 살펴보았던 타지마할과 비슷하게 만리장성 또한 많은 군인과 인부가 동원되었다. 진시황이 처음 만리장성을 축조할 무렵에는 약 30만 명이 동원되었으며, 이후에는 연 1억 3,500만 명의 군인과 인부가 투입되었다고 한다. 상명대학교 조관희 교수는 “눈보라가 몰아쳐도 멈추지 못했으며, 길에서 자야 했고, 먹는 것은 부실했다.”라고 설명했다.
게다가 한눈에 봐도 거대한 건축물을 축조해야 하니 그만큼 많은 양의 돈이 필요했고, 결국 백성들에게 세금을 많이 걷어 충족했다고 한다. 성벽을 쌓는 일에 막대한 인력이 차출되어 나가는 것도 모자라 백성들이 내는 세금으로 돈을 충당한다고 하니 백성들의 불만이 쌓이지 않을 수 없다.

▲ 만리장성 전경
이렇듯 위대한 면모와는 반대로 많은 비판 또한 야기했던 만리장성은 최근 들어 우리나라에서도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는 중국이 다름 아닌 ‘동북공정’의 일환으로 만리장성을 이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은 수년 전부터 고구려를 중국 역사의 일부로 만들고, 한국을 중국의 속국인 것처럼 중국 역사에 편입시키려고 다양한 역사 왜곡 논란을 자행해왔다. 김치를 ‘파오차이’라고 부르거나 중국 역사에 고구려와 발해를 포함하는 것, 중국 문화에 한복을 등장시키는 것 등이 모두 이러한 동북공정 논리에 해당한다.
이러한 동북공정의 대상으로 최근에는 만리장성이 떠오르고 있다. 만리장성은 본래 1987년 유네스코 세계 문화재산으로 등재될 당시 약 6,000km의 길이로 기록되었다. 그러나 2009년에는 다소 늘어난 8,851.8km라고 주장하였으며, 급기야 2012년에는 21,196.18km라고 발표했다. 현재는 성벽을 짓고 있지 않음에도 어째서 만리장성의 길이는 계속해서 늘어나는 것일까.
이는 옛 고구려와 발해의 영토까지 모두 만리장성의 길이에 포함했기 때문이다. 고구려와 발해를 중국의 세계적인 문화재의 일부로 편입하여 중국의 영토로 각인시키겠다는 목적이다. 실제로 해외 출판물이나 언론을 통해 마치 고구려와 발해가 정말 만리장성의 일부이며, 중국 역사의 일환인 것처럼 전해지기도 한다.
만리장성은 세계 7대 불가사의라고도 불리며 많은 이의 사랑을 받고 있다. 그만큼 장대한 외관을 통해 웅장한 느낌을 자아내기도 한다. 그러나 그 속에는 많은 백성을 착취했던 역사적 아픔과 동시에 현재 일어나고 있는 동북공정의 문제 또한 존재한다. 랜드마크를 통해 단순히 외관만을 보는 것이 아니라 역사적, 정치적 시각으로 바라보는 눈을 기를 수 있기를 바란다.

이미지 출처
https://www.sciencetimes.co.kr/news/%EB%A7%8C%EB%A6%AC%EC%9E%A5%EC%84%B1-%EC%A0%95%EB%A7%90-%EB%B0%A9%EC%96%B4%ED%9A%A8%EA%B3%BC%EA%B0%80-%EC%9E%88%EC%97%88%EC%9D%84%EA%B9%8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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