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의 시작, “세계 4대 문명” ①이집트 문명

작성자
김윤정
작성일
2023-05-10 20:07
조회
38

  최근 여러 국가에서 과거 문명이 남긴 유산에 대한 보존 방안과 역사적 가치에 대한 관심을 보인다. 문명이란 인류가 이룩한 물질적, 기술적 발전뿐만 아니라 사회구조적인 발전. 원시적 생활에 비해 발전되고 세련된 삶의 양태를 뜻한다. 이번 기사에서는 문명의 시작을 알린 세계 4대 문명 중 '이집트 문명'에 대해서 소개하겠다.

 

▲나일강과 신전

 

  문명 발생에서는 기후, 물, 무역을 할 수 있는 강의 유무 등 지리적 조건이 가장 중요하다. 이집트 문명은 나일강의 범람으로 비옥한 농경지가 생겨난 뒤 이집트인들이 도시 국가(노메스)를 형성하면서 시작됐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집트의 부근에 왕국이 생겨났으며, 기원전 3100년경 상왕국의 나르메스(Narmer) 또는 메네스(Menes)라는 이름의 왕에 의해 분리되었던 이집트가 통일됐다. 이때부터를 '고대 이집트 문명기'라고 한다.

 

  통일 이후, 고대 이집트의 왕 메르네이트가 집권하던 초기 이집트는 통일만 되었을 뿐, 내부적으로 여러 갈등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는 당시 집권하던 파라오들을 상징하는 조각상인 '세레크'를 통해 알 수 있다.

 


▲나메르의 이름이 새겨져 있는 세레크와 매 모양의 세레크

 

  본래 파라오의 상징은 '호루스'라는 매의 모습이다. 하지만 페립센의 시대에선 '세트'라는 개의 모습으로 대체되었다. 당시 권력이 호루스를 숭배하는 것에서 세트를 숭배하는 것으로 바뀐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아직 갈등을 겪고 있는 세대임을 증명한다.

 

  세레크의 상징이 호루스로 변화한 것은 ‘카셈케위’라는 파라오의 시대부터였다. 심지어 호루스뿐만 아니라 세트의 장식을 사용하는 등의 현상도 일어났는데, 이러한 점에 미루어 보았을 때 학자들은 카셈케위가 갈등 중이던 세력을 통합했으리라 추측하고 있다. 세력 통합 이후 강력한 왕권을 지닌 '고왕국 시대'가 나타나고, 이때부터 이집트의 대표적인 건축물 '피라미드'가 지어지기 시작했다.

 


▲스핑크스와 피라미드

 

  강력한 왕권을 바탕으로 한 고왕국 시대는 문화와 건축의 발전이 본격적으로 일어난 시대로, 특히 이집트 피라미드 건설의 황금기라고 불렸다. 최초의 피라미드는 파라오 조세르가 건축한 계단식 피라미드로, 기원전 2650년경에 세워졌으며 높이 62m의 거대한 크기를 자랑한다.

 

  이즈음부터 조세르의 피라미드를 포함해 건설 기간 피라미드의 크기가 확장되는 일이 잦았다. 피라미드의 크기가 거대하다 보니 완공 이전에 파라오가 사망하는 경우가 발생했고, 후대의 파라오가 짓다 만 건물을 완성해야 했기 때문이다.

 

  이 외에도 붕괴 피라미드, 굴절 피라미드, 붉은 피라미드 등 이집트의 다양한 피라미드는 파라오들의 강력한 왕권을 상징한다. 동시에 이집트의 국가적 역량과 관념과 신조 등이 반영된 이집트의 대표적인 상징물로 작용한다.

 

▲사자의 서

 

  이집트의 파라오는 살아있는 신으로서 절대적인 권력을 가졌다. 즉, 파라오는 정치적인 권력뿐 아니라 종교적인 권위까지 행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통치에는 당시 이집트인들이 파라오의 절대적 권위와 직결되는 태양신 '라'를 믿었다는 점이 크게 작용한다. 또한, 영혼 불멸과 사후 세계에 관한 종교적 관념이 전제된다.

 

  사자의 서는 고대 이집트인들이 미라와 함께 묻은 지하 세계의 안내서로, 죽은 이들이 안전하게 다음 세상에 도착하길 기원하는 기도문과 여러 사건을 해결할 때 외우는 주문, 신들에 대한 서약이 담겨 있다. 카를렙시우스의 『사자의 서』에 따르면 이집트인들은 최고 권력자인 파라오가 사후 세계에서도 삶을 누릴 수 있는 특권을 가지고 있다고 믿었다. 그들은 이러한 믿음을 바탕으로 피라미드 안쪽 벽면에 주문을 새겨 넣었다고 한다.

 

  사자의 서는 이집트인들의 사후세계와 영혼에 대한 관념을 매우 잘 나타내는 문서로, 특히 도덕적 행위를 강조했다. 내세의 구원 여부를 생전의 행위로 판단하며, 신을 저주하거나 경멸하는 행위뿐만 아니라 절도, 사기, 간통과 같은 인간 사회의 행위를 죄에 포함했다. 이를 통해 종교적 관념이 고대 이집트 사회에 큰 영향을 미쳤음을 알 수 있다.

 


▲고대 이집트의 상형문자

 

  고대 이집트는 건축뿐만 아니라 문화 측면에서도 많은 발전을 이루었다. 그중 하나가 '문자‘인데, 고대 이집트의 문자는 히에로글리프(hierogrlyph), 히에라틱(hieratic), 데모틱(demotic)으로 나뉜다. 특히 히에로글리프는 수메르 문자와 같이 가장 오래된 문자로서 기원전 3200년경부터 왕의 이름, 업적을 기록하는 데에 사용되었다. 히에로글리프는 주로 돌이나 나무에 기록되었고, 때론 벽이나 파피루스에도 기록되었다.

 

  이 문자는 구상적인 문자로 유명한데, 문자의 소재가 인체나 사람의 동작, 동ㆍ식물, 지형, 천체, 다양한 모양의 물건 등 모든 분야에 걸쳐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문자의 수는 기본적으로 700개이며, 본래는 소재를 나타내는 표의문자였다. 하지만 음의 적용에 의해 표음문자의 구실도 했다. 두음 활용에 의해 24개의 알파벳이 정해졌으며, 오늘날 널리 쓰이고 있는 알파벳의 먼 선조이다.

 

  이집트인들은 히에로글리프를 4세기까지 3,000년 동안 사용하였는데, 이 문자가 이토록 끈질긴 생명력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이 문자가 신의 말씀이었다는 데 있다. 히에로글리프는 인간이 신을 찾을 때 의지할 열쇠이면서 매우 추상적이고 물질적인 현실 세계도 잘 묘사하는 언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원전 30년 프톨레마이오스 왕조가 이집트에서 멸망한 뒤로, 히에로글리프는 차츰 잊히기 시작했으며, 전수조차 어려워져 히에로글리프를 알던 사람들이 없어졌다. 이후 1799년, 프랑스인 장 프랑소와 샹폴리옹이 읽는 법을 알아내 고대 이집트인들의 유산을 지킬 수 있었다.

 

  이렇게 이집트 문명에 대해서 알아보았다. 이집트 문명은 5,0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만큼 인류 역사에 있어 많은 영향을 미쳤다. 분명 우리 삶에 있어서 이집트 문명이 주는 역사적 가치는 매우 클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이 남긴 방대한 유산과 기록을 잊지 않도록 많은 관심을 기울이도록 하자.

 

  

  수습기자 김윤정

 

이미지 출처

http://www.dtnews24.com/news/articleView.html?idxno=578203 

http://kid.chosun.com/site/data/html_dir/2018/10/21/2018102101208.html 

https://www.thedrive.co.kr/news/newsview.php?ncode=1065589526819556

https://www.donga.com/news/article/all/20170321/83418788/1 

https://www.breaknews.com/sub_read.html?uid=489127&section=sc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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